세월에 내몰리 듯 그렇게 떠밀려 살다보니,
횅하니 벽에 남은 달력 한 장이 외롭습니다.

한 해의 끝에서 그 달력을 걷어낼 때마다,
내 안에서 부서지는 나의 소리를 듣습니다.

감당하지 못했던 나날들이 부끄러운 기억으로
살 속 깊이 파고 듭니다.

창 밖을 보니,
마지막 이파리를 벗고 겨울을 입은 나무들이 외롭지만
의연한 모습으로 추위를 견디고 있습니다.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슬픔 같은 것이
잠시 눈동자에 어리다가 이내 흔들립니다.

왠지 고독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향기가 되고 싶은 매혹적인 우울함이
텅 빈 몸에 차오릅니다.

그러나 이 겨울은 낯설기만 합니다.

지난 가을의 길목에서 돋아난 그리움이 한껏 부풀어,
낙엽도 아닌 것이 가슴 위에 아직도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이 겨울은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그렇게 저 홀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이럴 땐, 정말 누군가의 전부가 되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쓸쓸함을 배웠던 날처럼,
지워지는 한 해의 끝이 눈앞에서 하염없이 흔들립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헛헛함으로 쓰러질 것 같은 날…

그리움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내 안에서 조용히 불러봅니다.

비록, 낯선 바람에 한없이 흔들리는 빈 몸이더라도
이제야 겨울로 떠나는 나의 계절이 차갑지 않기 위해
작은 불씨 하나 그렇게 가슴에 지피렵니다.

– 안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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