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학교에서 가계부를 하나씩 줬어요.”

막내가 가방을 내려 놓으며 예쁘고 질 좋은
가계부 한 권을 건넸다. 처음 보는 가계부였다.

그 때 우리는 5남매의 학비 때문에 몹시
힘들게 생활했었다. 새벽4시부터 서둘러
도시락 5개를 챙겨 하나씩 학교에 보내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남은 것은 어수선한
집안청소와 설거지뿐이었다.

그 시간이면 나는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 가계부를 적곤 했다.
콩나물, 두부, 애들교통비 등 모두가 시원치 않은 것들이라
질 좋은 가계부가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나는 어느새 가계부에 낙서를 하게 되었다.
그날 애들과 이침부터 싸운 일, 돈 때문에 기분 상했던 일등.
이것저것 적다 보면 으례 원망의 초점은 매일 과음으로 살아가는
애들 아버지에게 향했다.

좋은 일, 나쁜 일, 반성할 일 등 꽤 두꺼운 노트 한권을
낙서로 다 메워가던 어느날, 막내가 나를 불렀다.

“엄마! 학교에서 가계부 가져 오래요.”
“뭐? 이거 큰일났구나” 나는 차라리 꾸중을 들으라고 했지만
딸아이는 가계부를 그대로 학교에 가져 갔다.

하루는 막내가 무언가를 잔뜩 안고 들어오며

“엄마 가계부가 우리 반에서 최고래.”

하고 말하더니 화장품 한 세트, 월간지,
또 새로운 가계부 한 권을 상품이라며 방바닥에 쏟아 놓았다.

“선생님께서 엄마가 흰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써서
그 성의로 이상을 주는 거래요.”

낙서로 시작해서 낙서로 끝났는데 상품까지 주니 미안하고 멋적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낙서장으로 인해 나는 인내심과 함께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계부는 내게 ‘재산 목록1호’의 소중한 보물이다.

밥 빌어다 죽도 못 먹을 위인/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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